| 중국 당대(唐代) 경교(景教)의 수용과정을 시대적 배경과 관련하여 설명하고 경교의 신라 전래 가능성을 다루고 있다. 경교는 일반적으로 중국 당나라(618-907년)에 수용되어 전개된 네스토리안 기독교로 알려져 있지만, 네스토리안파가 속해있는 아시리아 동방교회에 기반을 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임을 말하면서 경교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고 있다. 당나라는 여러 종교들이 공존하고 다양한 신들 덕분에 나라가 풍요로워진다고 생각했기에 이 시기에 여러 외래종교가 중국 땅에 꽃피울 수 있었고 그 중에서 전폭적인 국가적 지원을 받으면서 성장한 경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경교가 당에서 세를 넓히기 위해 취한 선교전략도 함께 살펴보고 있다. 경교의 전개 양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첫 번째가 정교유착(政敎癒着)이다. 경교는 전래 초기부터 당 황실 및 조정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황실의 공인과 지원을 받으며 선교 활동을 했다. 정교유착의 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유물이 바로 경교비인데, 경교가 수용된 때부터 경교비를 세우기까지 경교를 보호하고 장려했던 역대 황제들의 치적을 예찬하고 있다. 경교의 이러한 태도는, 당나라 내부의 경교 토착 기반이 미약한데다가 경교의 본산인 사산 제국이 패망하여 교단 후원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평가된다. 두 번째로는 타종교와 융화를 들 수 있다. 이들의 융화방식은 다양했다. 우선 타종교의 용어를 혼용 · 차용하여 경교의 교리적 개념들 풀어 설명했다. 경교는 선교와 교세 확장을 위해 도교의 용어를 사용했으며 불교 경전의 형식을 모방했고 유교의 충효 사상을 강조했다. 성경 번역은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발췌하여 번역한 편역과 경교의 성경 번역은 중국적 가치 및 전통과 충돌되는 성경 내용은 배제하고 중국에 수용 가능한 기독교 교리만 불교와 도교의 개념 및 용어를 차용한 격의(格義) 번역을 했으며, 경교의 개념과 용어에 상응하는 중국어 표현이 존재하지 않아서 격의 번역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에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그 외에도 타종교의 양식을 경교 유적과 유물에 반영했는데, 그로인해 불교의 고전적인 상징인 연꽃, 도교의 음양원리를 나타내는 구름과 여의주가 기독교의 대표적인 상징인 십자가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유물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예배 때 목탁을 치거나, 고인의 명복을 빌거나, 예배당 안에 인물 초상화를 걸어놓는 것 등 이교적인 의례행사를 행하기도 했다. 경주 불국사에서 출토된 돌십자가를 경교의 신라 전래 근거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학술적, 종교적, 정치적 이유로 장안을 오갔던 수많은 신라인들은 경교를 알았을 것이며, 경교는 자연스럽게 신라에 알려졌을 것이다. 이들 외에도 소그드 상인이 경교의 신라 전래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적으로 경교가 중국에 전래되는 과정에도 소그드 상인들의 역할이 컸기에 당의 정세와 교역 환경의 변화에 따라 수동적으로 신라에 오게 된 소그드인이 교역품 뿐만 아니라 새로운 종교인 경교에 대해서도 소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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