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 페르시아에서 태어나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활발한 학문 활동을 펼쳤던 울루그벡 왕의 업적을 살펴보았다.
울루그벡 왕은 문학, 음악, 외국어, 지리학, 법학, 논리학 등에도 정통해 학자의 면모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특히 수학과 천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이 왕의 최고 업적 중 하나는 천문표 제작이다. 『울루그벡의 천문표』는 한 해 길이, 지구 자전축 기울기 등에서 현대 천문학 수치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정확성이 뛰어나다.
울르그벡 왕이 왜 이렇게 천문표 작성에 공을 들였을까? 첫 번째 이유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스텝 지역을 횡단하며 수천 년을 살아온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과 중동지역의 아랍인들에게 하늘의 별은 목적지를 찾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길잡이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종교 의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이슬람교의 종교 행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슬람력으로 아홉 번째 달에 행해지는 ‘라마단’이 있는데, 이 라마단이 진행되는 한 달 동안 무슬림들은 일출과 일몰 사이에 금식을 하며 메카를 향해 예배를 드려야 했다. 이를 위해 무슬림들은 정확한 시간과 방향을 알아야 했는데, 매일 달라지는 이 시각을 정확하게 산정해내기 위해 천문표가 필요했다.
울루그벡 왕의 또 하나의 위업은 교육기관 마드라사 건립이다. 울루그벡은 1411년 17세의 나이에 부왕 샤루흐로부터 사마르칸트 지역을 독자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권한을 물려받자 이곳을 학문의 중심지로 육성시킬 계획을 세웠고 사마르칸트와 부하라 등 여러 도시에 이슬람 고등교육기관인 마드라사를 건립했다. 1419년에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광장의 ‘울루그벡 마드라사’가 완공되자, 그는 이곳으로 이슬람 세계의 저명한 학자들과 과학자들을 초빙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술 활동을 하게 했다. 이 덕분에 사마르칸트는 중세 학문의 세계적인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처럼 그의 후손들과 후대인들은 울루그벡을 학자의 자질을 갖춘 군주로서 학문과 교육, 과학, 예술, 문화 부흥에 더 공을 들여 사마르칸트를 전 세계 지성의 산실로 만든 ‘위대한 학자이자 왕’으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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